시복식의 의미와 특성
타나토노트
2014-08-15 21:15:48 │ 조회 1873

시복식에 한복입은 성모상…교황 의자엔 ‘건곤감리’ 새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문답으로 본 내일 광화문 행사

16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103위 시성식에 이은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다. 당시 10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봉헌됐다. 광화문 안전벽 안에만 교구별 신자 17만명이 참석하며 그 밖엔 더 많은 인파가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시복되는 124위의 면면을 따져보면 한국 천주교로서는 시성식보다 오히려 더 큰 의미가 있다. 124위 시복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일문일답으로 풀어본다.

 

 

1. 복자(福者)란?

 

죽은 사람의 덕행과 신앙을 증거하여 공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발표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복자란 성인(聖人)의 전 단계다. 복자로 높이는 것을 시복(beatificatio)이라 하고, 성인으로 높이는 것을 시성식이라고 한다. 복자는 ‘행복하게 하다’, ‘복되게 하다’, ‘죽어서 천국에 있는’ 등의 의미다.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당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2. 왜 시복식을 하나?

 

천주교는 시복·시성식을 거쳐 복자와 성자가 되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순교로서 이미 천국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시복·시성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들의 삶을 기리며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이끌기 위함이라고 한다.

 

 

3. 124위는 어떤 인물들인가?

 

한국 천주교 가장 초기 인물들이다. 대표자로 거론되는 윤지충(1759~1791)은 전라도 진산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고종사촌 정약용을 통해 천주교를 접했다. 그는 1790년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이 가르침에 따라 집안에 있는 신주를 불살랐고, 이듬해 여름 어머니가 별세하자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이 일로 제사의 예와 효·충 등 유교적 가치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조선 왕조에 의해 체포돼 참수당했다. 이외에도 초선 천주교 여성 리더인 강완숙(1761~1801),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1756~1801) 등이다. 이들은 30년 전 성인이 된 103위 성인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전해준 신앙의 선배들이다.

 

 

4. 왜 시복·시성에 선후배가 뒤바뀌었나? 

 

김대건 등 103위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은 당시 이 땅에 선교를 하러 왔던 파리외방전교회가 주도했다. 그들이 입국한 것은 1836년이었다. 신해박해(1791년)·을묘박해(1795년)·정사박해(1797년)·신유박해(1801년)·을해박해(1815년)·정해박해(1827년) 등 이미 많은 박해를 거친 이후였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자기들이 직접 보고 기록한 순교자들 위주로 먼저 시복·시성 절차를 밟았기에 초기 선구자들은 누락됐다.

 

 

5. 시복자들의 특성은?

 

한국 가톨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군함을 앞세운 선교사들이 아니라 국내의 자발적인 공부와 탐구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조선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지배층의 불평등과 부패 등에 의해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던 실학파들 위주로 청나라에 오가는 사신 등을 통해 서학(천주교)을 받아들였다. 조선인으로선 처음으로 1784년 이승훈이 중국에 가서 세례를 받아 귀국해 정약종 등에게 세례함으로써 첫발을 내디뎠다.

 

 

6. 초기 순교자 시복의 의미

 

파리외방전교회에 의해 추진된 103위 시성과 달리 이번엔 한국 천주교에 의해 추진됐다.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신앙의 선조들을 따라 자발적 시복을 추진한 것이다. 초기 순교자들은 조선 사회 변혁을 열망했지만, 한국 천주교는 그 이후 그런 개혁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부패한 왕조와 일본 제국주의, 독재정권 등에 순응한 대표적인 종교가 되고 말았다. 초기 순교정신을 잇지도 못하고, 이 땅의 변화도 주도하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익히고 돌아온 김수환 추기경과 정의구현사제단이 등장한 이후에야 100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초기의 신앙 정신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초기 순교자의 시복은 조선 사회 개혁을 주도했던 인물들을 한국 천주교의 멘토로 내세우는 작업이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독재와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투신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순교 정신 때문으로 볼 수 있다.

 

 

7. 한국 천주교의 선조이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들

 

한국 천주교 첫번째 세례자이자 사제인 이승훈이 시복에서 제외됐다. 천진암에서 모여 공부하며 조선 천주교의 싹을 틔웠던 정약종, 이벽, 권철신, 권일신 등 5인 가운데도 정약용의 형 정약종만 이번에 시복된다. 이번 124위 가운데 무려 49위를 배출한 충청도 내포지역 전도의 1등 공신인 ‘내포의 사도’ 이존창도 포함되지 못했다. 당시는 ‘순교를 권하는 분위기’였다. 순교당하지 않는 것을 배교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존창도 결국 순교했지만, 처음 잡혀갔을 때 참수당하지 않았기에, 이번에 시복되는 중국인 주문모 신부에 의해 순교를 권고받았다. 또 이승훈과 이존창 등이 바티칸 교황청에서 정식으로 사제로 임명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신부가 된 ‘가성직자’였다는 점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들이야말로 한국 천주교의 밑동이 아닐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14일 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 평신도 이벽이 양반임에도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천주교를 받아들인 사실을 언급해 시복되지 않은 선구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8. 성자가 되기까지 과정은?

 

103위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됐다. 이들 중 79위가 복자가 된 것은 1925년 바티칸에 열린 시복식에서였다. 이어 1968년 24위가 역시 바티칸에서 시복됐다. 그 뒤 1984년 성인이 됐다.

 

 

9. 순교의 의미

 

천주교는 진리를 위해 소중한 목숨마저 내놓고, 내세 천국을 확신하는 순교를 참신앙의 증거로 본다. 따라서 순교 자체만으로 복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려면 기적심사를 거쳐야 한다. 복자로 지정된 이에게 간구한 신자의 불치병이 나았다는 증거 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03위는 신앙이 없는 땅에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순교한 자체를 성인의 자격으로 인정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기적심사 면제로 시성이 가능했다.

 

 

10. 이번 시복식의 특성

 

이 땅을 변혁시킨 선구자들인 만큼 토착성을 살렸다. 제대 옆엔 한복을 입은 ‘한국 사도의 모후상’인 성모상이 놓인다. 교황이 앉는 의자엔 태극기에 새겨진 주역괘 건곤감리를 새겼다. 남미 아르헨티나 해방신학 전통의 교황이 집전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당시 현대 남미의 독재 정부는 토착적인 것을 반그리스도적인 것으로 몰아 혹독한 박해를 가한 바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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